코페르니쿠스의 모습이 담긴 중국우표를 살펴봤다.
무려 70년 전의 우표인데 그렇게 촌스럽지는 않은 듯 싶다.
소인을 살펴보면, '북경', '54.12.2 I 17' 이렇게 찍힌 느낌이다. 도감가격을 살펴보았는데, 평이했다. 아마도 이 당시 중국에서 CTO형태로 많이 판매를 해서 그렇지 않나 싶다. 위 우표의 소인도 인위적으로 찍은 것인지? 아니면, 정말 사용된 우표인지는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 날짜 하단의 'PEKING'는 베이징의 옛날 명칭이라고 한다. 정말 사용된 우표인가??
아래는 도감의 내용이다.
도감의 가격은 평이하다.
코페르니쿠스 관련 네이버지식백과의 설명의 일부와 코페르니쿠스의 초상화 이미지(영문판 위키피디아)도 올려놓는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체계, 즉 지동설을 구상하게 된 것은 이탈리아 유학 시기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우주가 수학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 중요한 계기였다. 또한 고대 문헌을 조사하면서 이미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우주체계를 생각한 고대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계기였다. 남은 문제는 새로운 우주체계에서 행성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었다. [소론]을 내놓은 이후 꾸준한 연구를 통해 코페르니쿠스는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를 1532년경 거의 마무리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그는 먼저 우주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얘기한다. 또한 지구는 스스로 돌면서 태양 주위를 1년에 한 번 도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체계는 전통적인 교회의 입장과 다른 것이었지만, 적어도 당대에는 탄압받지 않았다. 오히려 교황청의 일부 인사들은 그의 이론을 옹호하기까지 했다. 물론 비판이 없지는 않았다. 예컨대 그와 동시대인인 종교개혁가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나 하늘의 덮개, 해와 달이 아니라 지구가 회전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발버둥치는 오만불손한 주장이 나왔다. 그 바보는 천문학 전체가 뒷걸음치는 걸 바라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체계가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세계관을 바꾸어놓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요컨대 그것은 ‘점진적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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