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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구입기록/우리나라

강강술래 만월사용필과 오래 전 광무 9년 소인자료 이벤트 당첨

by cystamp 2023. 10. 1.

정말 운이 좋은 듯 싶다. 또 이벤트에 당첨이 되었다. 마침 강강술래 우표 만월사용필이 없었는데, 다행히 1세트가 생겼다. ㅎㅎㅎㅎ그나마 다행이다. 우표발행일이 자꾸 바뀌어서 앞으로는 항상 미리 체크하기로 했다.

'동대문' 소인이라서 나에게는 더 의미가 있다. 늘 같은 곳에서 철인을 찍었는데, 다른 곳의 소인을 얻으니까 더욱 의미가 있다. 만월소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분이나 우표수집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희안하게 생각하겠지만...

 

다음으로는 오래 전 소인이다. 왜 이런 종이에 소인을 찍었는지? 그냥 기념삼아 찍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예전 소인의 모습은 제대로 확인할 수가 있다. 연대는 잘 모르겠다. 아직 사용필 수집의 초보자이기 때문에 연대를 가늠할 수가 없다. 어쨌튼, 소중히 간직해야겠다.

 

소인을 자세히 살펴보니, 광무9년 5월, 6월 소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광무9년을 찾아보니 1905년이다.

 

광무 연호에 대한 위키피디아 내용은 아래와 같다.

 

광무(光武)는 1897년 8월 17일부터 1907년 8월 11일까지 대한제국 고종 때에 사용한, 대한제국의 첫 번째 연호이다.

조선의 급진개화파(개화당) 세력은 을미사변(1895) 이후 갑오개혁(1894)때 만들어진 내정개혁안을 추진, 1895년 11월부터 양력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특히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정하고, 연호를 "건양(建陽)"이라 하였다.

그 후 1897년에 의정부 의정대신 심순택의 주청을 받아들여 8월 14일에 "광무"라는 새로운 연호를 정하고, 8월 17일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고종은 같은 해 10월 12일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이튿날(10월 13일) 정식으로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외부로는 명나라 연호인 숭정기원과 영력 연호를 쓰던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건양 이후로 건양, 광무 등의 연호를 사문서에 기재하였다. 그러나 명나라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던 조선의 일부 성리학자들은 광무라는 연호를 쓰는 것을 거부하였다. 특히 강원도 춘천의 유중악(柳重岳)은 개화정책과 단발령을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광무 연호를 쓰기를 거부하였다.

색칠된 부분의 성리학자들... 참 안타까운 분들이 아닐 수 없다. 명나라가 세계의 중심이라니.. 시대가 시대였으니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