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구입한 이집트 우표들 중 푸아드 1세 보통우표들을 정리해보았다. 도감을 찾아보니, 여러 종의 우표들이 있었으나, 구입한 우표들은 몇 종 되지 않는다. 결국 언젠가는 모두 수집하게 되겠지만, 이렇게 정리를 해서 블로그에 올려놓아야 관심을 계속 갖게 되어 결국 모든 묶음을 구할 수 있을 듯 싶다.
우선 가지고 있는 우표들의 모습 올려놓는다.
전체 묶음을 확인하기 위해 도감을 올려놓는다.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기 때문에 묶음을 모두 구하기에는 어렵지 않을 듯 싶긴 하다.
지난 번에 구매했을 때 작성했던 글은 아래와 같다.
이집트 푸아드 1세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았다.
이집트 푸아드 1세 (Ahmed Fuad, 1868.3.26 ~ 1936.4.28) 에 대한 지식백과의 검색결과이다.
여덟 번째 술탄 이스마일의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기 삶은 알려진 바가 없다. 1895년 2월 14일 카이로에서 첫번째 아내와 결혼 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1898년에 이혼 후 1919년 농업부 장관 딸과 두번째 결혼을 하여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다. 술탄을 계승하기 전 1908년 카이로대학교 설립을 주도하였고, 1913년 사임 할 때까지 초대 총장을 지냈다. 1913년 왕조의 술탄직을 얻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실패하였다. 이후 오스만 제국 치하의 알바니아를 점령하고, 독립국을 선언하였다.
1917년 이집트 지역 통치자 후세인 카멜(Husein Kamel)이 사망하자 내부적으로 혼란기를 맞이하였다. 191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한 이집트혁명 (1919)이 발발하였고, 영국은 위임 통치를 철회하였다. 1922년 2월 28일 이집트는 주권 국가로 인정받았고, 이집트로 돌아온 푸아드는 3월 15일 자신을 이집트 왕이라 칭하며 술탄위에 올랐다.
통치 초기에는 의회를 해산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으나, 1923년 헌법 자문 위원회가 설립된 후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1930년 헌법 자문 위원회를 해산하고 왕권 강화를 시도하였으나, 민중들의 반발로 1935년 원래의 헌법을 인정하고 복원하였다. 1936년 4월 28일 사망하여 카이로의 리파이 모스크(Al-Rifai Mosque)에 안장되었다.
다른 재미난 내용의 글들이 있었지만, 공식적인 기록만 블로그에 옮겨놓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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