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표소개/인물

에마누엘 폰 펠렌베르크 Emanuel von Fellenberg 스위스 교육학자이자 농학자의 우표

by cystamp 2023. 11. 25.

에마누엘 폰 펠렌베르크는 그렇게 유명한 분은 아닌 듯 싶다. 위키피디아에도 사진 딱 1장 밖에 없고, 사실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다. 영문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살펴보면 약간은 민족주의자로서 활동을 하다가 결국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인물로 파악이 된다.

 

우선 우표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기부금 우표이다. semipostal stamp

 

상단에 적혀 있는 'pro juventute'의 의미는 정확히 모르겠다. 기부금 우표 즉 자선우표라는 의미이지 않을까 싶은데, 검색을 해봐도 정확한 의미 파악은 힘들었다.

그리고, 하단에 적혀 있는 'Helvetia'는 헬베티아로 보통 읽으며, 스위스의 여신이며, 7세기부터 여성으로 스위스를 의인화하는데 사용하는 용어이다. 기원전 5세기 스위스에 정착했던 헬베티족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며 현재 스위스 연방을 헬베티아 연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헬베티아가 적혀 있으면 스위스 우표라고 생각하면 될 듯 싶다.

 

도감을 살펴보았는데, 특이하게도 사용필우표의 가격이 미사용우표보다 감정가격이 높았다. 그래봐야 얼마 차이가 나지 않지만, 가격 역전이 재밌기는 하다.

에마누엘 폰 펠렌베르크 Emanuel von Fellenberg 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내용 중 일부를 옮긴다.

필리프 에마누엘 폰 펠렌베르크(Philippe Emanuel von Fellenberg, 1771년 6월 27일 ~ 1844년 11월 21일)는 스위스의 교육학자이자 농학자였습니다.

로베스피에르가 멸망한 뒤, 그는 파리로 가서 고국에 닥칠 폭풍에 대해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의 경고는 무시되었고, 스위스는 안전을 위해 어떤 효율적인 수단도 강구하기도 전에 길을 잃었습니다. 급히 부담금을 일괄 인상한 펠렌베르크는 금지되었고, 그의 머리에 가격이 매겨졌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독일로 도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동포들에게 소환되었고, 프랑스 공화국 요원들의 야합과 잔인함에 항의하기 위해 파리로 사절단을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짧은 기간 동안 이 곳과 다른 외교관에서 부패와 음모가 너무 많아 그의 마음은 정치적 삶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그는 젊은이들의 교육에 전적으로 전념할 생각으로 귀국했습니다.

 

By Johann Friedrich Hasler - Hanns Peter Holl, Jeremias Gotthelf, Zürich/München 1988, S. 70,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65966

 

우표를 수집하다보면 정말 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알게 되어도 크게 인생살이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우표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되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도, 계속 조금씩 정리를 해보도록 해야겠다.^^